복기대 교수 "국내성은 고국원왕 때 도읍지"
고구려 장수왕이 새로운 도읍으로 옮긴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랴오닝성(遼寧省) 성도인 선양(瀋陽) 남서쪽 도시인 랴오양(遼陽) 일대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복기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교수는 나아가 "고구려 제2대 유리왕 때 옮긴 새로운 도읍지로서, 종래에는 장수왕에 의한 현재의 평양 천도 이전까지 줄곧 고구려 수도로 확정되다시피한 지안(集安)의 국내성은 사실은 고국원왕 이후의 도읍"이라고 주장했다.
복 교수는 단국대 북방문화연구소(소장 이성규)가 27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 대강당에서 '북방문화와 한국 상고문화의 기원'을 주제로 여는 제3회 학술대회의 발표문 '고구려 도읍지의 이동에 대하여'를 통해 이런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미리 배포한 발표문에서 복 교수는 현재 학계에 통용되는 고구려 도읍지를 보면, 초대 동명왕 때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환런(桓仁)에 소재하는 오녀산성에 건국했다가 유리왕 때 국내성으로 옮겼으며, 장수왕 때 평양으로 천도했다는 것이지만, 이런 도식은 일본학자들이 세운 것으로, 각종 기록을 보면 실제 고구려 도읍지는 모두 8곳에 달했다고 말했다.
복 교수는 삼국사기 기록을 토대로 하고, 중국 요나라와 원나라 정사인 요사(遼史)와 원사(元史),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종합할 때, 국내성은 유리왕 이후 장수왕 때까지 고구려의 도읍지였던 곳이 아니라, 제16대 고국원왕(재위 331-371) 때 옮겨온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 근거로 복 교수는 삼국사기에서 342년에 '환도'로 도읍을 옮겼다가 이듬해에 '평양 동황성'으로 다시 옮겼다고 했으며, 더구나 국내성에 대한 최근 중국측의 발굴조사 결과 고구려 문화층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국원왕 시대에 해당하는 동진(東晉)시대 중국청자와 이 시대 와당이라는 점을 들었다.
즉, 고고학적 발굴성과로 봐도 국내성 축조 연대는 4세기 중반 이전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장수왕이 고국원왕 이후 도읍인 국내성을 떠나 427년 새로 정착한 평양은 요사 중 지리지에 보이는 요나라 시대의 동경도(東京道)에 대한 기록 등을 볼때 오늘날의 북한 평양일 수 없으며, 랴오닝성 랴오양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요사 지리지에서는 지금의 랴오양 일대인 동경도가 본래 조선(고조선) 땅이며, "북위 태무제(太武帝)가 사신을 보내 (고구려왕을) 평양성에 살게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복 교수는 이 기록에서 이 고구려왕이 장수왕이라는 대목은 보이지 않지만, 태무제 시대라면 장수왕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장수왕이 새로 정착한 평양은 랴오양 일대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복 교수는 랴오양에 도읍한 고구려가 결국 지금의 평양으로 옮긴 것은 삼국사기 기록 등을 존중할 때 제25대 평원왕(재위 559-590)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복 교수는 "북경에 사신을 다녀온 연암 박지원이 '평양은 원래 한 곳이 아닌데 모두 조선 땅 평양 하나만을 생각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음에도, 식민지시대 일본학자들이 고착화해 놓은 학설에서 우리 학계가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 교수는 단국대 사학과 출신으로 중국 지린대 고고학과로 유학해 그곳에서 중국 요서지역 청동기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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