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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전 대금소리가 들여오는 감은사지 (感恩寺址) by 아름다움




천년 전 대금소리가 들여오는 감은사지 (感恩寺址)

경북 경주시 양북면(陽北面) 용당리(龍堂里) 55-1 번지 있는 신라 때의 감은사 절터로 사적 제31호로 1963년 1월 21일 문화제로 지정되었다.

경내 동․서삼층 석탑 (높이 약 14m) 남아 있으며 서탑은 1960년 완전히 해체 보수된 이후 대기 오염 등에 따른 훼손이 심해져 다시 2006년 4월 전면적인 보수 작업을 받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짓기 시작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신문왕이 부왕의 유지를 이어받아 나라를 지키는 사찰로서 682년(신문왕 2)에 완공하였다. 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두 탑만 남아 1300년 전 신라의 영광을 외롭게 지켜 오고 있다.

《삼국사기》에 있는 기록과 같이, 이 절의 금당(金堂)은 부왕이 죽은 뒤 그 화신인 용이 출입할 수 있도록 신문왕이 건립한 것 같다. 절터는 동해에 이르기 직전의 산기슭에 있는데, 거기에는 큰 3층석탑 2기가 동남으로 흐르는 대종천(大鐘川)을 앞에 두고 서 있다.

금당터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지표(地表)에는 원형 주좌(柱座)가 각출(刻出)된 1개의 초석이 있고, 곳곳에 사각형 초석(楚石)과 대석(臺石)이 있으며, 금당 마루를 이루었던 장대석 등이 있다. 중문터와 회랑터의 남쪽 절반 및 금당터의 대부분이 밭이 되었고, 회랑터 북쪽 절반과 강당 터는 민가에 들어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대나무 악기로 신라시대 대금이 사용되면서 삼죽(三竹)이라고 하여 대금, 중금, 소금으로 불리웠다. 삼국유사 만파식적조(萬波息笛條)에 나오는 대나무로 만든 퉁소에 관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용이 왕에게 대를 주면서 퉁소를 만들라 했는데 그것을 만든 뒤 한번 불면 인간 만사가 소원대로 이루어진다는 하나의 신화에서 대로 만든 악기는 신기(神器)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 때의 찬란한 영광은 살아져 가버렸지만 감은사지 텅 빈 절터에서 신앙과 믿음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는 외구의 침략과 노략질 앞에서 자신의 후손들과 조국을 수호하려는 불타는 대왕의 호국 심은 개인의 부귀영화가 아닌 나라를 위해하고 백성을 위해 죽어서 용으로 화신하기를 갈망한 대왕의 넋이 느껴지기 족하였다. 가슴속으로 애는 듯한 숙연함이 짙어오는 저녁노을 속에 천년세월을 훌쩍 넘어 신라인들이 애닮게 외는 염불소리와 대금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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