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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전 16세 여성의 삶과 죽음 by 아름다움

입력 : 2010.01.25 09:24

 


되살아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6세기 전후 정치·사회적으로 확실하게 그 귄위를 보장받지 못했던 창녕지역의 정치엘리트 집단은 사람을 희생해서라도 정권을 과시하고 유지하기 위해 순장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창녕 송현동 15호분에 묻힌 16세의 이 여성 순장자는 이미 사망한 정권의 핵심인물을 다음 세상에서도 섬기고 그 봉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독약을 마셨거나 질식사하여 무덤에 함께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왼쪽 귀에 금동귀고리를 하고 있던 그녀는 출산을 경험한 적은 없었고, 평소에 쌀·보리·콩 등을 주로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질환을 몇 차례 겪었고, 빈혈도 있었으며, 충치가 여러 개 있어 통증을 느꼈을 것이다. 종아리와 정강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거나 앞니로 무언가를 자르는 일을 하고 있었던 키 153.5cm의 그녀는 유난히 팔이 짧은, 편평한 얼굴의 여성이다. 이것이 과학적인 연구를 기반으로 한 창녕 송현동 15호분에 묻힌 1,500년 전 순장 여성의 이미지이며 이야기의 시작이다.


 

 


1,500년의 시간을 넘어 만난 여성의 인골


2007년 12월의 추운 겨울, 2년 여의 발굴조사가 마무리되는 순간, 경남 창녕 송현동의 6세기 초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15호분)에서 네 명의 순장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미 도굴로 봉분에 화산의 분화구처럼 구멍이 뚫려있었고, 무덤방의 돌벽과 돌천정은 일부 뜯겨져 있었다. 무덤방 안에는 도굴구멍으로 흘러들어온 흙이 방 높이의 절반정도 채워져 있었고, 도굴하면서 사용한 양초·낫·신발 밑창도 널부러져 있었다. 그 흙을 제거하면서 무수히 많은 유물조각과 뼛조각들을 보며, 파괴가 너무 심하다는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무덤방 안에 원래 있었던 1,500년 동안 서서히 쌓인 검은색의 진흙을 차근차근 떼어내는 순간, 도굴로 파괴되지 않은 얼마 안 되는 토기들과 함께 네 명의 순장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도굴구멍은 무덤방 입구의 반대쪽에 뚫려 있었다. 도굴꾼들이 드나들었던 방향의 뼈들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종아리뼈와 발 뼈들은 온전히 남아있었다. 그리고 도굴구멍에서 가장 멀리 누워있던 무덤방 입구 쪽의 인골만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 인골은 왼쪽 귀에 금동 귀고리를 하고 있었다.


 

고대 인골의 복원을 위한
국내 최초 학제 간 융합연구의 시작


한국 고고학에서 과거의 인골은 발굴조사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다양한 종류의 유물들과 함께 다루어지고 있다. 인골의 신체적 특징과 성별 및 나이의 판별 등이 연구의 주된 테마이며, 분석과 연구가 진행되면 보존처리과정을 거쳐 다른 유물들과 함께 보관된다. 그런 연유로 대부분이 발굴조사 연구보고서에서 출토된 인골의 특징 등을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형태학적 분석은 과거 인골연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연구방법론임이 분명하지만, 인간에 대한 관심과 그에 다가가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한국의 고고학에서는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외국의 경우 알프스의 아이스맨, 북유럽의 습지인 등이 복원된 적이 있고, 역사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코페르니쿠스, 바하, 투탕카멘, 클레오파트라도 조형물 또는 컴퓨터그래픽으로 복원되어 세계적인 뉴스로 소개되고는 한다. 발굴조사의 종료와 함께 1,500년의 시간을 너머, 그리고 추악한 도굴꾼들의 범죄에도 맞서 살아남은 이 인골을 우리의 손으로 꼭 되살려 고대 인골연구의 글로벌 스텐다드에 당당히 동참하는 것은 물론, 국민들이 옛사람의 얼굴과 모습을 꼭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고고학·유전학·화학·물리학·법의학·해부학·조형학의 국내 전문가그룹이 참여한 학제 간 융합연구로 1,500년 전 경남 창녕에 주인을 따라 묻힌 순장자의 복원연구를 기획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만큼 비교와 참고할만한 국내 연구사례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2010년 한국고고학회장으로 선출된 부산대 신경철 교수, 형질인류학자이며 국내 유해발굴을 진행한 충북대 박선주 교수, 한국고고학회 총무를 맡고 있는 충남대 우재병 교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을 역임한 김종열 연세대의대 명예교수, 서래마을 영아유기사건을 담당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박기원 실장,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정전가속질량분석기(AMS)를 운영하고 있는 홍완 박사 등 국내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여 각 과정에서 토론과 검증을 하였다.


 

 


고대 인골의 발굴과 과학적 인체복원연구


이번 연구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법의학자들이 직접 인골을 수습·기록하였으며, 고고학자와 유전학자가 함께 참여하였다. 순장자들은 무덤방의 입구 쪽부터 여성-남성-여성-남성의 순서로 누워있었으며, 발굴 이전 3차원 정밀스캔으로 매장된 자세와 위치 등을 기록하여 디지털화하였다. 수습한 뼈들은 세척과정을 거쳐 사람의 뼈대를 재구성하였으며,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였다. 그리고 3차원 뼈 모델을 형상화하고 복제 뼈를 제작하였는데, 손상된 뼈와 이미 없어진 뼈들은 한국인 표준 뼈 모델을 참고로 형태를 만들고, 인체복원연구의 대상인 여성 순장자의 신체 크기에 맞춰 비율을 조정하였다.


이와 함께 방사성탄소연대측정으로 95% 신뢰수준에서 420년~560년에 순장자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DNA의 유전학 연구에서는 남성 순장자 2명이 동일모계의 혈족일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뼈 속에 남아있던 콜라겐을 추출하여 탄소와 질소의 안정동위원소분석을 실시하였는데, 수수·기장·조 등의 식물보다는 쌀·보리·콩 등의 식물을 주로 섭취하였으며, 무덤방의 입구 쪽에서 가장 멀리 있던 남성 순장자는 다른 순장자들보다 단백질(육류) 섭취의 정도가 높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뼈에 대한 법의 인류학적·법치의학적 분석에서는 인체복원연구의 대상인 여성의 나이가 16세 정도였으며, 평소에 빈혈과 치통이 있었고, 생전에 전신적인 질환을 몇 차례 겪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정강뼈와 종아리뼈에서 확인된 바로는 반복적이며 급격한 운동을 했음을, 앞니에서 반복적인 행위로 파인 홈으로는 무언가를 계속 끊는 작업을 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외부적 충격으로 죽은 것이 아닌 질식 혹은 중독에 의해 사망하였으며, 순장자들이 백골화 된 후 매장된 것이 아닌, 죽은 후 바로 무덤에 묻혔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무덤방의 입구 쪽에서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던 여성 순장자의 뼈 복제를 완료한 다음 해부학적으로 뼈대를 조립하여 세우는 작업을 실시하였다. 발굴 당시 이 여성은 135㎝의 길이로 누워있었는데, 수습한 뼈를 측정하여 법의학적으로 산출한 키는 152~159.6㎝이었다. 조립한 복제 뼈의 키는 151.5㎝로 법의학적으로 산출된 키의 범위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렇게 복원된 순장 여성의 전신상으로 거푸집을 만들고 특수 실리콘으로 처리하여 최종적인 전신상을 만들었다. 이 전신상에 여러 차례 채색을 거듭해서 사람의 피부색과 똑같은, 심지어 실핏줄까지 표현하였고, 머리카락과 눈썹, 속눈썹, 코 속의 털까지 하나씩 심었다. 머리의 형태는 신라시대의 토용과 고대 고분벽화를 참고하였고, 대가야박물관에서 제공한 의복디자인을 참고하여 옷을 만들었다. 복원이 완료된 16세 여성 순장자의 키는 153.5㎝로 현대 한국인 16세 여성의 하위 5~25%에 속하는 작은 체구이며, 목이 길고 팔이 짧은, 편평한 얼굴이었다.


 

2년 동안의 연구에 참여한 연구진들은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이해해나가면서 학제 간 융합연구의 험난한 길을 해쳐나갔다. 그리고 학계와 시민사회에 종합적인 연구 성과와 1,500년 전 16세 순장여성의 모습을 선보일 수 있었다. 많은 주목과 격려를 받았지만, 과거 한국인의 모습과 삶에 다가가기 위한 첫걸음마를 내딛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고대 인골을 주제로 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 서로 비교하고 배워갈 수 있는, 그래서 의미 있는 과학적 사실과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역사지식이 창출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글·사진 | 이성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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